tangun-haed
 
  
 
 
 
  처음으로
   
  오 ! 단 군 !
  단군이라는 용어
  단군의 개념
  단군과 한겨레
 
  단군의 역사
  한국
  배달국
  고조선
  단군과 단군설화
   
  한사상 Hanism 은?
  배달경전
  천부경
  삼일신고
  366사(참전계경)
  단군팔조교
  영세위법
  신지비사
 
 
 
 
  희망을 찾아서
  단군닷컴 화백(포럼)
  글쓰기
  운영자와의 대화
  자료실
  투표토론
  (구)운영자와의 대화
   
 
 
 
 
 
 

 

 

 

 

 

 
 
 
 

 로그인  회원가입

평양시는 우리말 왕검시로 회복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운영자  (Homepage) 2004-06-13 20:26:10, 조회 : 9,887, 추천 : 1330

우리나라의 땅이름을 우리말로 회복하는 운동은 한겨레공동체가 존재해왔고 존재하고있는 우리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이 일에 북한 땅이 빠진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작업이 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은 한글화작업에 매우 열성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령 축구의 용어를 모두 우리말로 고쳐 쓰는 등의 노력이 그동안 남한에서 과소평가되거나 웃음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같은 일들이 민족적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한다면 진지하게 다시 평가되어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북한은 단군능을 발굴하고 다시 재건하여 고조선과 단군을 국내외에 알리는 일을 통해 우리 한겨레의 역사와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왔다.

그런데 나는 북한의 평양이 순수한 우리말로 표기되기를 희망한다. 남한은 한자어인 한양이나 한성대신 순수한 우리말로 서울을 사용하고있다. 그런데 북한은 왜 한자어인 평양을 사용하는가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만일 평양을 순수한 우리 말로 쓰지 않고 꼭 한자어로 써야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북한당국은 한겨레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북한도 하루속히 평양을 순수한 우리말로 회복함으로써 세계만방에 고조선과 단군을 알리고 민족적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에 나선다면 한겨레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인가?

1. 평양시가 왕검시가 되어야하는 근거

우리 한겨레가 고조선과 고구려가 평양을 수도로 삼았음을 삼국유사에서 밝히고 있다. 평양의 이름도 왕검성(王儉城) ·기성(箕城) ·낙랑 ·서경(西京)등으로 변해왔다. 그러나 이 많은 이름 중 순수한 우리말을 그대로 적고 있는 이름은 그 첫 번째 이름인 왕검성이다. 신채호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 평양의 옛 이름이 왕검성王儉城이요 ,신라의 선사仙史에도 평양은 선인 왕검의 집 平壤者仙人王儉之宅 ”이었음을 밝히고 있음은 당연한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조에 평양은 본시 선인왕검 집이다 平壤者仙人王儉之宅也라고 명시되어있기 때문이다. 오늘 날 평양시를 우리말로 고쳐 쓸 때 그 첫 번째 대상과 그 마지막의 대상이 왕검시가 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왕검이 임검 또는 알감이라는 설도 있지만 왕검이라는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고 본다.

2. 평양시가 왕검시가 되어야하는 민족사적인 이유

이 일은 우리 한겨레가 고조선 이래 동북아의 정치적, 문화적 대국으로 군림해온 민족역사를 만방에 알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겨레의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또한 고구려가 지나의 역사라고 우기는 일에 우리가 덩달아서 반응하는 일은 우리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고구려 이전에 고조선이라는 거대한 문명국가가 만주와 한반도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알리는 일이 그들의 억지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됨과 동시에 그들의 극심한 무지를 깨우쳐주는 일이 될 것이다.

평양시를 왕검시로 고쳐 부르는 일이 얼마나 떳떳하고 당당한 일인가를 제대로 설명하기에 나의 지식과 문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3.평양시의 우리말 이름의 두 번째는 밝달시이다.

평양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기 전에 먼저 서울의 풍납동을 살펴보는 것이 평양을 이해하는 일에 토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풍납동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풍납토성이 있는 곳이며 백제의 수도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이 풍납風納이란 단어가 바람들이라는 말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이병도선생이다. 납納이라는 말이 드리,들이라는 말이 된다는 사실에서 풍風=밝이며 납=들=달이라는 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 부분에서 이병도선생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이 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가 풍납이라는 말은 곧 밝달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밝달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은 이처럼 묘하게 숨어있는 것이다.

규원사화에서 북애자가 단군은 박달임금의 한자표기라고 말하고 또한 마찬가지로 단군을 박달임금이라고 말한 양주동선생의 주장은 설득력이 크다. 여기서 단군과 밝달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에서 분가해 나간 백제초기의 수도는 곧 밝달성이며 이를 왕검성이라는 말과 연결시킬 수 있는 상상력은 이 일에 도움이 된다. 백제도 고구려와 한 계통으로 고구려가 왕검성인 평양을 수도 삼았듯 백제의 수도도 밝달성으로 이름 지었을 가능성을 여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초기백제의 수도로 추정되는 서울의 풍납동에서 밝달이라는 이름을 찾아내고 그 이름이 평양의 옛 이름인 왕검성과 연결될 수 있다는 단서를 찾아냈다.

평양平壤의 평平이 밝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의 한자표기라는 최남선선생의 주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을까? 이 부분에는 너무나 많은 설명이 있어 누구도 최남선선생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양壤은 무엇인가? 우선 양壤의 사전적 의미가 땅이며 지역이라는 설명은 그 자체에서 벌써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밝은 땅이라는 말이다. 즉 하늘의 태양이 만천하의 중심이듯 이 태양과 같이 밝은 땅이 만천하의 중심이라는 철학이 숨어있는 것이다.

이제 서두에 말한 밝달과 밝은 땅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 가를 살펴보자. 달이라는 말에 대해 양주동선생이 땅 예로 든 양달과 응달에서 사용된 달이 땅이라는 주장은 옳지만 달이 사용된 다양한 말이 모두 땅을 단순하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양주동선생이 달=땅이라고 설명한 내용은 평양이 밝은 땅이라는 사전적인 해석에 대해 거의 완전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설명만으로도 평양이 밝달이라는 순수한 우리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일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것이다.

또 양梁의 방훈邦訓이 돌,들,드리이며 그것이 취락,성읍이며 또한 들어가는 문이었다는 사실을 찾아냄으로써 삼국사기의 사다함전에서 양梁이 문門으로써 이는 양이 곧 돌,들,드리였다는 사실을 유추해낸 분은 이병도선생이다. 여기서 양梁은 평양의 양壤과 그 음과 의미가 부합된다. 그리 보면 평양은 ‘밝은성읍’이었다는 말로 설명되며 양이 곧 돌,들,드리라는 말과 연결되고 있다. 즉 평양이 밝달성이며 왕검성으로서 나라의 중심이 되는 도시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양주동선생은 평양에 대해 직접적으로 ‘밝내’라고 말했다. 달이 땅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다름 아닌 양주동 선생임을 생각할 때 평양이라는 이름에서 한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평양=밝달이라는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그분도 역시 이 지점에서 멈추고 말았다. 양주동선생이 주장한 평양=밝내에서 내는 천川 또는 양壤으로 설명했다. 양梁이 돌,들,드리라는 이병도선생의 해석으로 생각해본다면 평양은 밝은 태양이 비치는 땅, 태양이 뜨는 지역 등이 되며 밝달의 의미와 무리 없이 연결된다. 나는 양주동선생의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평양=밝달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이병도선생은 고려사 김위제전에서 서경(평양)의 일명을 백아강白牙岡이라 한 구절에 대해 백아강이 곧 백악白岳의 다른 표기임을 설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백악의 백이 밝임은 누구나 아는 내용이며 악岳이 산이라는 말도 누구나 아는 말이다. 따라서 이병도선생은 백아강을 밝은뫼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산은 곧 달이라는 해설을 따르면 이병도선생의 주장은 완전히 다른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즉 백아강은 밝은 뫼가 아니라 밝달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나는 백아강을 밝은뫼라고 설명하는 이병도선생의 주장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밝달이라고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평양의 순수한 우리 이름이 밝달이라는 사실은 풍납동에서 밝달이라는 내용을 찾아내는 일에 비하면 이처럼 너무나 쉽게 찾아지는 내용이다. 역사서에 평양이 왕검성이었다는 내용과도 단군이 곧 밝달임금이라는 내용과 약속이라도 한 듯 앞과 뒤가 맞아떨어지며 빈틈없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

평양에 대한 우리말에 대해 설명한 밝달성이라는 말과 왕검성이라는 말은 모두 단군을 설명하는 같은 용어라는 점에서 우리가 도달한 밝달성과 왕검성이라는 두개의 결론은 사실상 하나의 사실을 두개의 서로 다른 방향에서 관찰하여 설명한 것이 지나지 않는다. 즉 평양시를 왕검시로 이름을 바꾸었을 때 왕검시의 개념을 설명하는 말로서 밝달은 필수적인 내용이며 밝달시로 바꾸었다면 밝달을 설명하기 위해 왕검의 개념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평양시를 순수한 우리말로 바꿀 때 그 두 번째 대상으로 밝달시라는 용어를 제시함에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평양시라는 이름을 왕검시나 밝달시로 바꾸었을 때 우리는 그 누구에게든 이 순수한 우리말에 숨어있는 한겨레의 무궁무진한 역사성과 철학을 자랑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평양이라는 한자어 자체에는 아무런 역사성이나 철학도 찾을 수 없다.

한겨레의 무궁무진한 역사성과 철학을 담고 있는 순수한 우리말 서울을 한성漢城이나 한양漢陽이라고 했을 때 그 한자어에서 우리 한겨레의 자랑스러운 역사성과 철학과 연결할 그 어떤 것도 찾기가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사달
위에서 언급하신 이병도 양주동 최남선 신채호 선생 등의 논문을 알 수 있을까요? 혹은 그 분들의 주장을 모아 놓은 책이라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2006-12-04
20:34:49



운영자
위의 예를 든 이병도, 양주동, 최남선, 신채호선생께서는 그리 많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이 분들의 책을 찾아 읽어보시면 쉽게 위의 내용들을 찾을 수 았을 것입니다. 유익한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2006-12-17
11:13:43

 


삼족오
평양(平壤)은 '밝달' 말고도 '펴라(강물, 밝다, 불)'라는 뜻도 있습니다. '펴라'를 한자로 쓴것이 바로 평양입니다. 굳이 왕검시로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007-01-23
19:10:41



운영자
이 게시판에서 다루려는 주제는 평양의 지명을 순수한 우리 말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漢陽이나 漢城과 같은 한자어보다 순수한 우리말인 서울이 부르기도 좋고 우리의 역사적 자부심을 살려내는 일에도 옳은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平壤도 우리 말로 왕검시나 밝달시로 바꾸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平壤이 원래 우리말 '펴라'라는 주장을 한 분은 조선상고사의 저자 신채호 선생입니다. '펴라' 도 평양의 순수한 우리 말 옛 이름 목록중의 하나입니다.

平壤이라는 한자어를 왕검나 밝달이라는 순수한 우리 말로 바꾸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는 운영자의 생각에 '펴라'는 그 대상을 하나 더 추가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樂浪도 '펴라'라는 우리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따라서 평양을 '펴라'라고 생각하려면 먼저 平壤이 樂浪과 같은 말이라는 것도 설명해야 합니다. 운영자는 이 문제가 다소 복잡하다고 생각해서 '펴라'를 생략하고 평양을 왕검와 밝달로 설명한 것입니다.
2007-01-27
06:53:42

 


  추천하기   목록보기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zero
tagun
 
 
 
 
 
 
 
 
Copyright 1999-2004. AO μ¿E? Choi donghwan . All rights reserved. webmaster@tangun.com